보고 끄적 끄적...2010. 6. 23. 06:32
새벽에 일어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는데.
어쨌든 정말 다행이다.
나이지리아에 2 : 2 무승부.
그러나 골득실로 우리가 B조 2위가 되면서
1위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그리스와 아르헨티나가 0:0 상황일테는 얼마나 가슴 졸였던지...)
첫 원정 16강이라 방송도 들썩인다.



물론 남다른 각오로 임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초반부터 공에 대한 집착력이 강해 보였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움직임도 확실히 빠르다.
축구의 문외한인 내 눈에도 그 속도가 놀랍더라
패스 연결은 우리나라 보다도 훨씬 좋아 보이기도 했다.
너무 일찍 첫 골을 허용했지만
그래도 왠지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첫 골은 그리스전과 똑같은 상황이 만들어낸 세트 플레이
영리한 이영표가 만들어낸 파울.
기성룡이 올린 코너킥이 이정수의 발에 맞고 들어갔다.
마치 그리스전이 리와인드 되는 느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머리가 아니라 발이라는 점)




수비수 이정수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로써 벌써 2번째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한 골 더! 한 골 더!)
홍명보 선수 이후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란 찬사까지 받고 있다.
16강 경기에서도 세트 플레이에 의한 이런 멋진 장면이 자주 연출되면 좋겠다.
이번 월드컵에서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박주영.
후반전에 멋진 골을 드디어...드디어... 선사했다.
(이 골은 정말 너무 너무 멋지고 정확하고 환상적이었다)




함께 뛴 선수들이 모두 축하해주는 모습이 왜지 뭉클하다.
박주영에게 이 경기가 얼마나 절실한 경기였을지...
골을 넣은 이후에도 박주영은 교체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여러 차례 슈팅을 만들어냈고
꽤 위력적이고 아까운 슈팅도 두어 번 나왔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마음 고생 심했을 또 한 사람.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김남일.
골문 바로 앞에서 상대 선수에게 가한 파울이 PK 상황을 만들었다.
고의적인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이 2:1로 이기는 상황에서 골문 바로 앞에서의 PK라니...
박주영의 자책골보다도 이번 월드컵 통틀어 가장 불운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푹 숙인 고개와 꽉 다문 입술이 모든 걸 대변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PK 후 김남일을 열심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만회를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슈팅까지 하면서...
다행히 우리가 16강에 진출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온갖 비난의 화살이 김남일에게 꽃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축을 하거나 수비를 잘 못해서 골을 먹게 되면 나는 그 뒤에 꽃힐 화살과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악플들이 미리부터 걱정스럽고 두려워진다... 그렇게 잘하면 늬가 나가던가...)


2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정성룡 GK의 선방이 여러 차례 보였다.
그리고 우리팀에 행운이었던 상대팀 슈팅도 몇 차례 있었고...
아쨌든 우리나라에서 이번 월드컵으로 정성룡이라는 젊은 GK를 발견해 다행이다.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달리던 박지성과
재치있게 여러 번 파울을 유도해서 우리팀에게 좋은 코너킥 기회를 마련해줬던
노련한 이영표의 플레이가 돋보였다.
역시나 선배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은 늘 아름답다.
박지성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던 파울은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상대팀이 밀착수비하는 모습을 보니
박지성이 우리나라 캡틴은 캡틴이구나 싶기도 하고...
세계적인 명성이라는 게 그냥 생기는 건 결코 아닐 테지만,
온 경기장을 누비는 박지성의 모습은 항상 어디서든 돋보이는 것 같다.
만약 박자성의 신발에 물감을 묻힌다면
그라운드는 온통 박지성의 발자국으로 빽빽하게 칠해질 거란 말도 있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뤄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긴 하겠지만
16강 우루과이 전을 승리로
8강, 4강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나까지도
이렇게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으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작은 축구공 하나에 이렇게까지 열광하고 즐기는 걸 보니
월드컵이 지구인의 축제가 맞긴 한 것 같다.
그나저나 새벽인데도 거리 응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더라.
다들 저기서 밤 새운건가?
대단한 열정들 ^^
부럽다.. 청춘이... ㅋㅋㅋ



경기 끝나고 우리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우라니라 선수들은 창피하게 옷도 없나봐!"
"왜? 엄마?"
"벗어서 쟤네들 도로 주쟎아~~~!"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8. 06:34
중앙대에서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다행히 날이 날이니만큼 일찍 끝내줘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바빴다.
처음으로 DMB 시청을 했다.
헤드폰을 어디다 뒀는지 몰라 정말 한참을 뒤적거리다 겨우 찾아냈다.
장신의 그리스 선수와도 너무나 잘 싸워줘서 힘든 경기가 될거라는 걸 예상은 하면서도
희망을 품고 시청했다.
나도 이렇게 조마조마한데 직접 뛰어야 하는 선수들은 심정이 어떨지...
축구 황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 허정무호와의 결전.




결과는 4 : 1 패배.
축구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아르헨티나의 경기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마치 축구화에 자석이라도 붙은 듯이 공이 척척 달라붙는 것 같은 모습.
그러나 그 틈을 악착같이 뒤쫒으면서 몸싸움을 하던 우리 선수들도 
충분히 잘해줬고 그리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들의 노력과 수고까지 무시하면서 비난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첫 골이 자책골로 기록된 박주영 선수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보내지 말았으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거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망연해있는 박주영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힘이 빠지면서 두려워졌다.
무책임한 악플러들의 몰상식한 댓글 행렬이 시작될까봐.
그는 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얼마나 사생결단으로 뛰던지...
TV 화면에 잡힌 그의 눈빛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리오넬 메시.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알게 된 선수인데,
(정말 나는 축구의 문외한이다... 월드컵때만 축구를 보는 사람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올해의 선수"라는 타이틀은 결코 겉치레가 아니었구나 절감했다.
"메시라고 쓰고 메시아라고 읽는다!"
어디선가 이 문구를 보고 속으론 "지가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했는데
정말 놀랍게 잘 하더라.
장신선수도 아닌데(170 cm) 달릴 때 스피드는 그를 거의 거인처럼 느껴지게 하더라.
엄청난 돌파력과 개인기란...
앙리나 지단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내 눈에 "메시"의 존재는 놀라운 개안(開眼)이기도 했다.
메시는 볼을 몰고 달릴 때 최고 속도를 낸단다.
낮은 무게 중심으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방향과 템포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상대 수비 2~3명쯤은 쉽게 제친다는 메시.
최고 속도로 볼을 몰다가 기습적인 왼발 슈팅을 날릴 때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상대가 도저히 예측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패스, 밀집수비 틈을 가르는 패스는
"명품"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감독이
"우리에겐 메시가 있다!" 라고 말한 게 정말 빈말이 아니었구나 싶다.
어제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골도 메시의 발끝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마라도나가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선수라고 하더니만...



어제 3골 기록으로 남아공 월드컵 첫 해트트릭의 주인공이 된 곤살로 이과인.
이 선수의 순간 판단력과 스피드에도 감탄했다.
현재 득점 1위에 오른 이과인은 이날 경기의 MOM(man of the match)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날 우리 선수들의 선전도 눈부셨다.
전반전 45분에 무서운 스피드로 이청룡이 달려와 멋진 골을 선사했고.
(이 골은 정말 멋졌다. 멀리서 찬스를 보고 거침없이 달려오던 이창룡... )
또 골망을 가를 위협적인 골을 GK 정성룡이 온 몸으로 막아내며 투혼했다.
끝까지 열심히, 성실히 달려준 그들의 모습이 나는 고맙고 아름다웠다.
경기는 이번뿐만이 아닐 것이고.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으로 그들의 축구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이니까...
이들의 앞으로의 가능성은 또 얼마나 눈부신가!



집에서 가족들이랑 응원하면서 봤는데 초등학교 3학년 조카놈이 물었다.
"근데, 이모 차두리는 왜 안 나와?"
얼결에 나, 
대답했다.
"응, 아직 충전이 안 끝났데~~"
차두리는 또 다시 이렇게 로봇이 되고 말았다.
죄송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6. 05:55
이정열, 서범석, 박건형, 박은태, 박정환, 윤형렬, 배해선, 차지연
쟁쟁한 뮤지컬 배우 8인이 특별한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었다.
<Intermission>
제목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가요 명반.
흔히 공연 1막과 2막 사이의 10~20분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을 intermission이라고 한다.
아마도 뮤지컬이라는 무대에 익숙한 이들 8명에게
이번 앨범을 만드는 작업이 intermission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바쁜 무대 공연 중에서
(정말 이들만큼 바쁜 뮤지컬 배우들도 없을 것이다)
앨범을 만들고 이렇게 3일간의 콘서트 무대까지 만들었다.
정말 몸이 많이 아팠는데도 너무 보고 싶었던 공연이라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수록곡>

01. 같은 하늘 아래 - 이정열

02. 그 사람 - 배해선 & 이정열
03. 소원 - 윤형렬
04. 바람이 분다 - 배해선
05. 서커스 - 박건형
06. 편지 - 박은태
07. 그대 내 품에 - 차지연
08.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 박정환

09. 너에게 - 서범석


담겨있는 곡들은 개인적으로 한결같이 내가 과거에 참 많이 좋아했던 곡들이다.
항상 무대 위를 에너자이저하게 뛰어다니던 배우들의 감성 가득한 노래를 듣는 건... 그래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퍽이나 다정하기까지 하다.


연극 <풀 포 러브> 때문에 박건형이, 그리고 열심히 훈련병 생활중인 윤형렬을 제외한 6명이
김광석의 "나의 노래"로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워낙 화음과 발란스를 잘 맞추는 뮤지컬 배우들이다보니
조화롭게 경쾌하고 아름다웠다.
확실히 김광석의 목소리로 들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1부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2부는 뮤지컬 넘버나 다른 가요들을 부르는 무대로 꾸며졌다.
앨범을 듣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콘서트에서는 차지연, 박은태, 박정환, 배해선아 부른 노래들이 기억에 담긴다.
특히나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는 현재까지도 내가 애뜻하게 좋아하는 곡이다.
박정환이 부른 노래...
노래를 아주 썩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노래 부르는느낌이 나는 참 좋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를 때 확연히 달라지는 표정과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평온한 만족감은
보는 사람까지도 부럽고 질투나게 한다.
물었다.
"기타 칠 때 많이 행복하신가봐요?"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가 대답한다.
"네, 정말 행복합니다"



박은태가 부른 김광진의 "편지"는 살짝 눈물이 베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차지연이 부른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는 그녀의 목소리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약간 끈적거리면서 짙은 여운이 남는 목소리.
배해선의 "그사람"은 정말 오래된 노래인데
(30년이 더 된 곡이란다. 근데 난 이 노랠 끝까지 다 안다. ㅋㅋㅋ)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없던 첫사랑도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 ^^
참 아름다운 배우다. 배해선은.
2부에서 부른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참 멋졌고... 
차지연은 그날 <몬테크리스토> 낮공연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배달(?)되어 콘서트에 참가했단다.
2부에서 관객을 뒤흔들며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들을 열창한 후
<몬테크리스토> 막공 인사를 위해 다시 바람처럼 왔던 곳으로 배달됐다.
(후문에 그녀는 몬테크리스토 막공 무대인사에서 옥주연과 함께 엄청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트롯트를 열창한 범사마 서범석과 박은태의 모습도 새로웠고...
나름데로 뽕짝 Feel를 연출했는데 어설프면서도 서툰 모습이 오히려 귀염성 있었다.
(서범석의 2:8 가르마와 박은태의 주황색(?) 남방은... 어쩔거야~~~)
서범석이 부른 라만차의 넘버 "impossible dream"은 잠시 그의 돈키호테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까지...)



<inermission> 앨범은 가수 출신 배우인 이정렬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더 클래식" 벰버 박용준이 편곡에 참여해서 만들어졌다.
익숙한 노래를 무대 배우들의 감성으로 다시 듣는 것,
그것도 현장에서 직접 듣는 즐거움은
참 특별하고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몸이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아마 나도 힘껏 그들과 함께 열광했으리라...
개인적인 아쉬움이...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앓고 있다.
오뉴월에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 걸려 심하게 골골거리는 중.


                                                    박정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녹음 모습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5. 06:28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이 있었던 날이다.
만 원의 행복 티켓이 있어서 빗 속을 뚫고 대학로를 찾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거리 응원을 하나...
괜한 노파심도 있었지만 대학로는 빗 속에서도 이미 그 준비가 한창이더라.
(확실히 젊다는 건 좋은 거다...^^)
예전에 박정환이 출연했을 때 보려고 했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놓쳤다.
콘서트 뮤지컬 <Wait for you>
몇 년 전에 봤던 <오디션>은 그룹 싸운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Wiat for you>는 길거리 공연 가수에 대한 이야기다
빌리와 루아.
(주인공 이름이 살짝 애견스럽다...)



기억할라나 모르겠지만 아역배우 출신 김수용이 남자 주인공 "빌리"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TV 드라마 <간난이>이에서 간난이의 동생으로 나왔던 배우.
그런데 벌써 34살이란다.
이 사람이 아역배우 라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처럼 늙수그래한 사람이나 알지...ㅋㅋㅋ)
김수용 본인도 그러더라.
"어린 연령층의 관객은 제가 아역 배우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라고...
큰 작품들도 꽤 여러 편 해서 이젠 제법 팬층도 두터워진 상태다.
<뱃보이>, <렌트>, <노트르담 드 파리>, <헤드윅>, <로미오와 줄리엣>, <남한산성>
만년 간난이 동생으로만 생각했었는데 34살이라고 하니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김수용은 한동안 비극만 한 것 같아 이번 작품을 선택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의 직업이 거리 가수, 그것도 통기타 가수인데
그가 기타를 칠 줄 모른다는 사실 ^^
아주 급하게 속성으로 기타를 배웠다는데
실제로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어색하거나 초짜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보기에는 꽤 잘 치는 것 같았다.
밝고 경쾌하고 신나는 소극장 뮤지컬.
스탠딩이 힘겨운 나로써는 마지막 커튼콜이 이제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자꾸 무릎에 힘이 풀리고 마냥 앉고만 싶으니...
("오디션" 때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쩝!)
노래도 그닥 나쁘지 않고 연기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공감하며 즐기기엔....
(어쩌랴... 내 나이가 그런 걸....)
여자 주인공의 루아(유하나)의 연기는 좀 어색하고 불안정하더라.
커튼콜만큼만 했어도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그녀의 본 공연은 커튼콜이었던 모양이다.
멀티맨 역할을 한 강대종 씨,
참 힘들겠다.
<어쌔신>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에 당황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멀티맨을 할 내공은 아닌 것 같다.
최고의 멀티맨 "임기홍"을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시 보게 되지는 않을 듯 ^^



연기를 하는 배우도 인정했듯
잘 짜여진 드라마가 있는 공연은 아니다.
그러나 젊음을 발산할 수 있고.
발산된 젊음을 보면서 흥겨워할 수 있는 공연이다.
타인과 함께 미친듯이 방방 뛸 수 있다는 거...
그것도 이젠 부러움이다.

You remember that I steel wait for you!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2. 23:49
2 : 0으로 이겼다.
그것도 너무나 멋지게...
한국의 "속도"가 그리스의 "높이"를 눌렀단다.

마음 같아서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가고 싶었지만 여름 감기가 걸려서...
집에서 정말 손에 땀을 쥐며 봤다.
멋지다.
내가 박지성이 골을 넣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대로 됐다.
박지성은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는데,
그 말이 이제 점점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차두리가 눈에 뜨게 수비를 잘 할거라고 했는데, 그것도 맞았다.
그리스 선수들이 번번히 차두리에게 막히더라.
두리 아버님 해설하면서 좋으셨겠다.
(혹시 나 신기있나??? ㅋㅋ)
물론 몇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승리가 아니라 태극전사 모두의 선전과 노력과 도전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멋지다.




역시나 노련한 초롱이 이영표,
후반전에 교체해서 들어온 진공청소기 김남일도
뜨거운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골문을 지켜야 했던 우리의 새로운 히어로 GK 정성룡도 (정말 너무 잘하더라)
골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중앙에서 수시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킥을 날렸던 박주영도
수비수면서 어느 틈에 중앙으로 들어와 이영표가 만들어낸 코너킥으로 대한민국의 첫 골을 넣은 이정수도
그리고 그리스 선수를 무력하게 만든 최전방 수비수들까지...
특히 미드필더 김정우의 쉬지 않고 뛰던 모습은 인상적이게 아름다웠다.
후~~ 불면 똑 부러지게 말랐던데 어디서 그런 강단과 지구력이 나오는건지...
(죄송하지만 꼭 귀순한 사람같은 체격이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얹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살찔 틈 없는 플레이"라고 한단다.
무슨 뜻인지 완전 100% 이해 가능하다.



외신들도 "Great Korea"라며 축하를 보내고 있다.
FIFA는 경기가 끝난 뒤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캡틴 박지성을 그리스전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 MOM)"로 뽑았다.
더불어 오늘의 골(Goal of the day)에도 선정됐다.
마치 내가 뭔 일을 한 것 처럼 으쓱해진다.
(약간 정신줄 놓으면서 소리 살짝 질러준 것 밖에는 없는데...)
이 모든 게 태극전사들이 눈부시고 아름다운 승리 덕분이다.
축구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이게 진정한 "아트 사커"다.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10. 08:26


2007년 초연된 <쓰릴미>는 류정한, 최재웅이 "나"를
김무열. 이율이 "그"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연의 <쓰릴미>를 놓쳤다.
그리고 재공연이 됐을 때도 또 다시 몇 번을 놓치고...
겨우 작년 봄에 김우형/정상윤, 김산호/정상윤 페어의 <쓰릴미>를 두 번 관람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정상윤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발견은 놀라움 그 자체였었다.
극 자체가 보는 사람을 완벽하게 집중하게 만들긴 하지만
정말 끔찍하게 집중해서 봤던 공연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얼마나 깊고 그리고 오래 가던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리고는 또 얼마나 후회했던지... 류정한의 "나"를 보지 못한 것을...


       2007년 류정한(나), 김무열(그)                         2009년 정상윤(나), 김우형(그)

2010년 다시 돌아온 <쓰릴미>는 무려 4쌍의 페어가 "그"와 "나"로 나온다.
내가 선택한 페어는 "최재웅-나, 김무열-그"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예매 싸이트에서 완판이 된 페어다.
(무섭더라. 엄청난 속도로 좌석이 빠져나가는게...)
다행히 무대 위 양 싸이드에 위치한 배심원석 예매에 성공했다.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래도 배심원석이 어딘가 싶다.
시야장애는 있지만 현장감 하나는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예매에 성공했으니...
(실제로 시야장애는 좀 있더라. 그것도 배우 최재웅의 탁월한 두상에 의한 시야장애 ^^)



<쓰릴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뛰어난 두뇌, 부유한 집안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 두 명이
어린 소년을 유괴하고 급기야 살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동성애와 방화, 유괴, 살인 등의 내용이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고 있으면 극 속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그 오묘한 긴장감과 부도덕이 주는 은밀함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충분히 들쑤시고 자극한다.
기꺼이 공범자가 되어 협조도 은폐도 동조도 다 하고 싶다.
"그"와 "나"
동성애의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붙어있고 싶은 심정이 절절해진다.



단 두 명의 배우와 한 대의 피아노로 이루어진 공연.
그 피아노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 또한 놓쳐서는 절대 안 되는 부분이다.
내 귀엔 피아노가 마치 배우처럼 대사를 하는 것 같다.
감정의 변화와 분위기를 타이밍 정확하게 치고 들어오던 피아노.
예전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동선보다 다소 아래 위치했던 피아노가
이번 공연에서는 공중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배우들의 동선은 더 자유로워졌고 피아노는 은밀해졌다.
(그리고 연주자, 정말 잘 연주하더라.)
몇 번씩 뒤집히는 반전과 치밀한 심리묘사.
몸싸움(?)같이 치열하고 처절하던 그와 나의 행동과 다툼같은 이유들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숨통을 조였다 놨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치명적인 유혹"
그건 다름 아닌 나를 향한 정확한 멘트였다.



무대석인 배심원석에서의 관람은 극의 타이트한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극중 "나"의 위치였던 오른쪽 배심원석은
가끔 최재웅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의 김무열의 표정을 샅샅히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무열은 데뷔작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느꼈던 건데,
표정이 참 풍부하고 조명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배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땐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적절하게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무대 위에서 이런 영민한 배우를 보면 무지 즐겁다)
<지하철 1호선>에서 제비 역을 했던 그를 보면서 "젊은 놈이 잘하네!" 했었는데
그도 이젠 제법 선 굵은 배우가 되어 무대 위를 부지런히 꽉 채우고 있다.
그 또래 배우들 중에서 딕션도 가장 정확하고 선명하다.
TV 에서도 꽤 비중있는 역할로 많이 나와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까지 확보한 상태.
최재웅과의 12회 공연 완판의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그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재웅도 우스개소리처럼 말했었다.
"우리 팀의 강점은 김무열이 있다는 것이다"



김무열의 축복받은 체격조건 역시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큰 장점 중 하나다.
마치 양복 카탈록 모델을 보는 느낌 (^^)
저런 색깔의 수트가 어울리는 사람 별로 없을텐데 그에게는 상당히 썩 잘 어울린다.
솔직이 이번 공연에서 "그"가 입는 수트가 개인적으론 마음에 안 든다.
예젠엔 짙은색 수트였는데 이번 의상은 어쩐지 가벼워보이고 심지어 유머러스해보이기도 한다.
조끼에 커프스까지 갖춘 완벽한 수트에 이런 느낌의 노익장이라니...
그런데 김무열 "그"는 그 옷마저도 거든히 소화하더라.
오히려 히스테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신체조건의 탁월함을 무시할 수는 없겠구나 싶다.
특히나 무대 위에 서는 배우라는 입장에서는 축복받은 신체조건(^^)이라 하겠다.
김무열이 반대편 배심원석에서 조명을 받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감탄을 하게 된다.
야누스적인 느낌이랄까?
대사와 노래를 부를 때 확연히 달라지는 목소리 톤도
이런 야누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해맑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섬득함이라면 이해가 될까?



"나" 최재웅!
박정환과 함께 내가 열심히 찾아 보고 있는 무대 위 배우.
일단 나는 그의 독특한 대사톤이 참 좋다.
약간은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를 떠올리게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데도 늘 독백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니컬한 톤.
흔들리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은 특히나 <쓰릴미>의 "나" 역에 딱 적격이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나"
명확히 두드러지진 않지만 확실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목소리 톤을 따라가면
그가 "나"의 심리상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피아노 연주가 함께 덮일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라니...
엄청난 몰입으로 스스로 "나"가 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해서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 감정을 무대 위에서 완벽히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만약 극중 "나"가 완벽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면 <쓰릴미>는 긴장감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최재웅은 확실히 <쓰릴미>에서 완벽한 공범자,
그 모습, 그 자체였다.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이 아니었을까?
"나"를 연기한다는 것은....



... 안아줘, 만져줘. 사랑해줘!
널 갖고 싶어!
한 번이라도 날 제대로 느낀 적 있어?
날 만족시켜줘!
뭐든 할께, 자기야!
너 없인 나도 없어!
상관없어.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런 민망한 대사들은 최재웅은 참 절절하고 강하게 잘 친다.
사람들은 <쓰릴미>에서 "나"는 여성적이고 "그"는 남성적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두 사람의 페어를 보면서 정확히 그 반대를 생각했다.
최재웅의 "나"는 남성적인 심리가 강하고
김무열의 "그"는 은근히 여성적이라고...



예전 공연에서는 포인트를 주듯 웃음이 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빠져있다.
(최재웅, 김무열 페어에서만 그런가??? 다른 팀들은 못 봐서...)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좋다.
뭐랄까 웃음조차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그 빡빡한 긴장감이...
단지 그 극의 웃음 요소라면 자주빛 수틀의자!
극의 분위기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하고 상당히 귀부인스러운 자태의 의자는
바라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피아노가 위로 올라간 걸 빼면 개인적으로 예전의 무대 배경이 더 마음에 든다.
너무 인위적인 나무도 그렇고...
처음 "나"의 등장 장면에서는 관객 출입구를 그대로 이용해서 훨씬 좋았다.
배심원석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배심원석 덕분에 전체적으로 무대가 타이트해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극의 느낌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배심원석의 관람객들 상당히 신중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관람한다. 정말 배심원같이...)



최재웅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참 맑고 깨끗하다.
언듯 들으면 보이 소프라노 느낌이 들 정도로...
무심한듯 하지만 수시로 변화는 표정과 대사톤을 따라가는 것도 "나"의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래서 그의 무대는 나는 가능하면 소극장에서 보는 게 더 경이롭다.
김무열. 최재웅....
이 두 페어의 만남은 참 묘하다.
여러 곳에서 "이중성"의 경험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니까.
다시 보고 싶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미치겠다.
나 역시나 "너무 멀리 왔다. 그를 따라 여기까지..."

 

   * 2009년 너무 놀라운 경험을 줬던 "정상윤- 나, 김우형- 그"의 <쓰릴미> 



                              의미심장하게 웃던 정상윤의 ending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9. 05:40



오랫만에 합정동 양화진 문화원 목요강좌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탐이 나는 강연이었는데 들을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사람을 귀하게 가꾸는 글쓰기>
김용택 시인이 정한 제목을 가만히 발음해본다.
왠지 마음 속에 따뜻한 훈김이 올라오는 것 같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님은 청바지에 회색 자켓을 입고 강연장에 올라섰다.
자그마한 키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
꼭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차돌을 마주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네 어른을 뵙는 것 같은 친근함까지...
개구진 표정과 재미있는 입담 속에는 그가 38년 동안 가르쳤다는 초등학생의 순수가 그대로 묻어났다.
진심으로 부러웠고 그리고 오랫만에 넉넉했다.
아이들의 시를 소개하는 모습에서는 꼭 개울가의 반짝이는 물빛 같은 눈빛이었다.
나도 모르게 꺄르르 꺄르르 햇살처럼 따라 웃게 된다.



시인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교과서 이외에는 어떤 책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영화는 참 많이 봤었다고...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이야기하면서
주인공 윤정희에게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 시인 강사  "김용탁"이 바로 자신이었노라며  해맑게 자랑(?) 하신다.
귀여운 홍보성 멘트와 함께...
이제는 퇴임을 했지만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까지 가르친 38년의 교편 이야기는
그 어떤 역사보다 생생하고 다정하다.
(시인 김용택은 덕치 초등학교에 붙박이 선생이었다. 
 규정 때문에 1~2년 타학교로 전근을 가기도 했지만 항상 다시 덕치 초등학교로 돌아왔단다.)
"하는 짓이 지 애비랑 똑같다"는 진리를 자신은 정말 많이 목격했다며 웃으신다.
어떤 때는 아이를 향해 무심코 그 아이 부모의 이름을 부를 때도 있었단다.
그럴 때면 자신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그는 덕치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단다.
시인이 말한 초등학교 2학년의 특징에 모두들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정직하고 진실함이 통하는 시기
  -->그래서 무엇을 하든 진지하고 열심이란다. 
       운동회에 달리기만 봐도 고학년은 1,2,3등만 열심히 달리는데 2학년은 심지어 꼴등까지도 열심히 달린다면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고자질하는 눈과 입모양이 또 얼마나 진지한지 모른다고...
세상을 늘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진 시기
   --> 그래서 그 아이들의 눈엔 세상이 늘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신비롭게 보인단다.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놀 땅만 있어도 행복한 시기
   -->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면 어쩜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잘 노나 싶단다
시인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한 가지씩 숙제를 내준다고 한다.
일주일동안 자신의 나무를 한 그루씩 정해서 자세히 보고 글을 써오라고.
아이들이 한 그루의 나무를 "끝까지 자세히 보게" 되면 드디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되기 시작한단다.
나무를 통해 아이들은 신비함을 깨닫게 된다고...
그러면서 시인은 신비함과 신기함의 차이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신비함이 사라지면 신기함만 남는다"고...
그런데 이 말의 속뜻은 꽤나 정곡을 찌른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신비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느냐고 청중을 향해 질문한다.
아마 없을 거라고...
"저 인간 왜 저러나~~~" 하는 신기함만 남지 않았느냐고...



세상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게 없다는 말이
왠지 가슴끝에 뜨끔하고 뭉끌하게 걸린다.
지금껏 나는 아름답고 신비한 사람을 신기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것 아닌지...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라는 당부도 전했다.
우리나라 부부들의 기념일 마지막 장식은 거의가 "싸움"이란다.
그게 다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이 인간이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저러나...." 
그 마음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다들 공감 백배의 표정들이었다)
결국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면서
대통령의 생각이 나라를 바꾸고, 교장의 생각이 학교를 바꾸고
목사님의 생각이 교회를 바꾸고, 가장의 생각이 가정을 바꾼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세히 봐야" 한다는 말도 전한다.
자세히 봐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돼야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돼야 인격이 된단다.
그리고 인격이 만들어지면 드디어 관계가 맺어진다고 말한다.
관계는 당연히 갈등을 만들 수도 있는데 이 갈등을 아름다운 조화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단다.
관계의 악화가 오면 한 쪽으로 쏠리는 쏠림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그 가장 대표적인 게 본인은 "교육의 양극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자신은 "항상 지금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결국 사람을 귀하게 가꾸는 글쓰기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가장 귀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평생공부, 예술적 재능을 키우는 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늘 놓치 않겠노라고...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이 말을 마친 시인의 모습이
내겐 누구보다 젊고 건강한 청년으로 보였다.



김용택 시인이 들려준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시도 옮겨본다.
너무 귀엽고 그리고 다들 정말이지 명작이다. ^^

<여름>
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

<쥐>
쥐는 나쁜 놈이다.
먹을 것을 살짝살짝 가져가니까.
그러다 쥐약먹고
 죽는다.

<뭘 써요? 뭘 쓰라구요?>
시써라
뭘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서 내라고!
내.
제목을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맘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1번만 더하면 죽는다.
뭘 쓰라고요?
이 녀석아!
장난하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7. 05:42




솔직히 이건 좀 된장할 일이긴 했지만
성스러운(?) 지방선거일에 오전 근무를 해야했다.
그 와중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6시에 집에서 나와
새벽잠 없으신 동네 어르신들과 나란히 2열 종대로 서서 
부지런한 젊은이 소리를 들으며 성스러운(?) 투표권을 행사했다.
아마도 하늘이 감동하셨나보다.
내 선거 인생 최초로 심히 은혜롭고도 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게 정말 기적이지! ^^)
선거날 오전 근무라는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예매한 <몬테크리스토>
그것도 30%라는 몹시도 은혜로운 할인율까지...
사실 5월 4일 엄기준 몬테크리스토로 인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에
나름의 정화(淨化)가 간절히 필요하기도 했었다.
류정한 몬테크리스토, 차지연 메르세데스, 조휘 몬데고 라는 캐스팅이 
망설임을 현실화 시키기에 충분하기도 했고...



류.정.한.
이 사람에 대해 이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 사람의 무대 위 삶이 시작되면,
나는 그대로 반푼이가 되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솔직히 이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그가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다...)
첫공연을 봤을 때 공연장 때문에 나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의 몬테크리스토 때문에 꾹꾹 참아낼 수 있었다.
(결코 그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는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류정한의 몬테크리스토는 끔찍하고 잔인스럽게 사람을 이리저리 쥐고 흔들어댔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놀아나고 말았다.
"이런 악마같은 배우, 세상에 또 있을까?"
특히나 1막 마지막 노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부를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생생하고 끔찍스러울 뿐이다
류몬테가 그러라고 말한다면
몬데고도, 당글라스도, 빌포트도 단칼에 내가 다 처리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야쿠자스런 마음까지 생길 판이다.
(너희 셋, 다 주~~~거~~~~써~~~!) 



"류정한 미친 거 아냐?"
함께 관람한 사람이 혀를 내두르며 쏟아낸 감탄사.
그 순간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게 인간 맞아?"
(원초적 표현에 민망하긴 하지만 솔직히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암! 인간일리가 없지! 절대로!
 또 모르지, 등딱지를 열면 에너자이저한 밧데리가 우수수 쏟아질지도...)
선거의 뒷끝이라 그랬겠지만
이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찍어야지... 이런 생각까지도 했으니 제대로 홀리긴 한 모양이다.
"문화 대통령 류정한"
그래도 일단 눈은 짝짝이 아니니까 뽀대는 제법 난다. 
(뭐 그 정도면 비쥬얼도 상당히 건전하고...) 
명확한 딕션과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표현하는 그의 목소리는 역시나 황홀경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비록 먼 곳에서 본다고 해도 목소리만으로도 표정까지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
들음으로써 볼 수도 있게 만드는 배우 류정한의 놀라운 능력!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중독처럼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때는 그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강력하고 끔찍한 마약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극심한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몹쓸 약쟁이들은 상당히, 꽤, 무지, 엄청나게 많다.
어쨌든 그는 무대 위에서 그 날 역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충분히 찬란했고
그리고 충분히 빛이 났다.
(그래, 그는 확실히 난 놈이다...)



차지연의 메르세데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노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솔로 곡은 참 아름답게 부르더라.
(단지 온 몸을 흐느적 거리며 부르는 게 영 어색해서...)
단테스와의 듀엣 곡들은 차지연의 목소리가 좀 강해서인지
옥주현 메르세데스처럼 간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사 톤이 이상하게 약간 신파조로 느껴지기도...
개인적으로는 옥주현 메르세데스가 이 뮤지컬에는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결론을...
대신 차지연이 "지킬 & 하이드"의 루시를 하면 정말 딱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차지연 메르세데스가 너무 자신만만한 여장부처럼 보여서였을까?
그녀는 몬테크리스토도 몬데고도 결국은 선택하지 않고
혼자 꿋꿋하게 잘 살아낼 여자처럼 보였다. (원작처럼...)
<영웅> 이후로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조휘의 모습 역시도 반가웠다.
조휘의 몬데고는 참 처량하고 절절하더라.
그는 메르세데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는 여린 남자였고
그 절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거칠고 강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최민철 몬데고에게서 느끼지 못한 "연민"을
나는 조휘의 몬데고에서 느꼈다.



2층 발코니석에서의 관람은 나에게 잊지 못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선사했지만
공연 자체는 전체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무대 스크린과 조명에 감탄케하는 의외의 성과까지 있었다.
확실히 1층 앞좌석에서 보는 스크린과 조명은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2층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설아트센터 발코니석 관람은 
절대로 절대로 다시 감행하고 싶지는 않다.
(허리 제대로 작살난다...)
 


프랑크 와일드혼의 작품도 그렇지만 배우 류정한의 무대는 내겐 그렇다.
꼭 뒷심을 발휘하게 만든다.
프랑크 와일드 혼이 만드는 작품들은 일단 드라마틱하면서도 격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OST도 "must listen"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하고...
거기에 괴물스럽게 완벽히 배역을 진화시키는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가세한다면?
이겐 정말 끝장인거다.
솔직히 노래를 너무, 제대로, 끔찍히 아릅답게 부른다.
작품 속 인물에 대한 해석도 너무 탁월하고,
회가 거듭될수록 인물과 배우가 갖는 일체감이라는 게 진화 혹은 성숙의 단계 그 이상이다.

포인트를 똑똑 찍어서 말하는 대사 톤과 호흡 조절은 가히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번도 그가 무대 위에서 헉헉대며 숨차 하는 모습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과감한 액션 히어로가 되어 과거엔 하지 않았던 엄청난 몸쓰기를 보여주는 현재까지도 말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숨을 쉬긴 쉬느냐고...)
부러우면 지는 건데...
차라리 부러운 걸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부러움이 파산으로 직결되는 게 이 몹쓸 약쟁이들의 현실인지라...
내가 당글라스도 아닌데
류몬테는 자꾸 나를 파산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공정치 못한 일" 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7. 06:38


너무나 보고 싶었던 공연인데 3번의 내한 공연때마다 매번 놓쳤던 작품이다.
매튜 본(Matthew Borune)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
4번째 내한공연에서 드디어... 드디어...
이 멋진 신세계를 만나다.

 
                                                                                                    - 메튜 본과 백조들

1960년 영국 런던 출생 메뉴본은 무용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영국 최고 권위의 예술상인 "올리비에상(Olivier Awards)"를 무려 4번이라 수상한 인물.
그의 이력을 찾아 보고 두 번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나 젊은 사람이여서 놀랐고, 또 하나는 엄청난 천재성에 놀랐다.
22세에 런던의 현대 무용 컨서버토리안 라반 센터(Laban centre)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무용 교습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 늦게 자기 길을 찾은 사람 늙각이 안무가가
지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새로운 예술 장르를 만들어냈다.
22살까지 쌓아온 연극과 무용, 그리고 올드 뮤지컬에 대한 깊고 방대한 지식이
그를 이 분야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밑받침이 되었단다.



1987년 27세의 나이에 자신만의 댄스 컴퍼니인
"어드벤쳐스 인 모션 픽쳐스(Advantures in Motion Pictures)" 창단해서
<호두까기 인형> 같은 고전 발레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995년 남성 무용수들을 백조로 기용한 파격적인 <백조의 호수>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전 세계적인 집중을 받았다.
대사 없이 노래와 춤으로만 극이 진행되는 "댄스 뮤지컬"을 처음 만들어낸 안무가 메튜 본.
<백조의 호수>는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장면에 감동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엔딩 장면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백조의 호수>의 1대 백조인 아담 쿠퍼(Adam Cooper)가
성인이 된 빌리로 나와 비상하듯 하늘을 향해 높게 뛰어 오른다.
(8월 드디어 엘튼 존이 참여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우리나라에서라이센스 공연에 들어간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엔딩 장면                               1대 백조 아담 쿠퍼

<라만차> 이후 오랫만에 찾은 LG 아트 센터.
다행히 내가 보고 싶었던 조나단 올리비에 백조와  샘 아처 왕자다.
낮공연은 다른 사람들.
캐스팅 공지가 미리 되지 않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횡재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횡재는 지금까지도 내내 계속된다.
(어쩌면 좋아... 이 사람들...) 




백조와 흑조(낯선 남자)를 연기한 조나단 올리비에.
이 사람의 손끝과 발끝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솔로로 춤을 출 때는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고
왕자와 페어를 이룰 때는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하고 그리고 사랑스럽다.
또 군무에서 주변 백조들과 발란스를 맞추는 모습에서는 묘한 평화로움까지 느껴진다.
(키 작은 백조들과 키 큰 백조들 사이에서 올리비에의 보폭과 점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백조의 군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한다.
"정말 아름답다..."
2막에서 흑조(낯선 남자)로 나와 파티장의 모든 여자들을 후리는(암만 생각해도 이 표현이 딱이다) 모습은
옴므파탈이라는 단어조차도 무색하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점프력. 


                                                                          - 조나단 올리비에

감탄하지 말자... 감동하지 말자...
지금 나는 계속 내게 주문을 걸고 있다.
"감동하면 지는 거다!"
아니,
"감동하면 파산하는 거다!"
이렇게 5월 30일까지 버텨야 한다...



무대와 의상, 조명도 환상적이라 누가 참여했는지 찾아봤다.
무대 및 의상 디자인은 리즈 브라더스톤(Lex Brotherston),
조명 디자인인  릭 피셔(Rick Fisher)란다.
두 사람 다 세계적인 사람이란다.
백조 의상은 잘못 만들면 참 우수울 수도 있었을텐데
보면 볼수록 정말 백조 같다.
(저렇게 위는 맨살을 보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소란스럽고 번잡스럽지 않은 무대는 깔끔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조명은 춤의 포인트를 따라가면서 관객에게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는 느낌이다.
오직, 경이로울 뿐...
메뉴 본은 어떻게 백조를 남자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것 역시 경이로울 뿐...



내 작품들에 어떠한 이름을 붙일 것인가가 매우 큰 이슈로 여겨지고 있다.
이게 뭐야? 무용이야? 맞다. 연극이야? 이 말도 맞다. 우리는 이것을 "댄스 시어터(dance theater) 또는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이라고 부르고, 나 자신을 연출가이자 안무가라고 한다. 그러나 연출로 더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의 작품을 위해 플롯을 구상해 나가는 작업은 마치 영화 시나리오나 연극의 극본을 쓰는 것과 흡사했다.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그리고 원작 시나리오 속에 숨어 있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쌓아 나갔다. 이것은 내가 영화나 연극을 구상하고 발전시키는 과정과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안무가라기 보다는 일종의 "창조자", "스토리텔러"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라고 여겨진다.                           --- Matthew Borune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4. 05:55

기간 : 2010.05.19 ~ 2010.05.23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극본 : 지경화
연출 : 채승훈
극단 : 창파
출연 : 남명렬, 김호정, 민경진, 이명호



제 31회 2010 서울연극제 참가작 8편 중에 
피날레을 장식하는(?) 작품이었던 연극 <옥수수밭에 누워있는 연인>
극본과 연출자는 낯설었지만
든든한 출연진만으로도 "must see" 목록에 포함시켰던 작품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 난 후의 이 복잡하고 심란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참 막막하고 어려운 작품이구나...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공연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던 찌질이가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안개가 짙게 깔린 듯 운명적이며, 미스터리 하며, 원초적이며,
잔혹하며, 그로테스크하다!!

현실보다 잔혹한 환상, 환상보다 짜릿한 상상...

연극의 메인 헤드라잇은 이렇게 거하고 완강했다.
뒷북이긴 했지만 뒤늦게 시놉시스를 찾아봤다.
(시놉시스... 대략 참 난감하게 줄거리를 전해준다
 이것은 말을 한 것도, 말을 안 한 것도 아니여~~)

<시놉시스>
시와 도시의 경계에 선 어느 허름한 집. 여명이 어슴푸레한 새벽 그 집엔 이선(김호정)과 한보(남명렬)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듯 불안하고 초조하다. 지금 그들은 일종의 모의를 하고 있다. 이선의 아버지(한영:남명렬)로부터 거액의 돈을 타내기 위한 모략. 과연 그들은 아침을 맞아 그들의 계산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들은 걱정된다. 현실의 고통과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 억울하다. 마치 거인의 걸음과도 같은 파열음이 들리고 한보는 이선을 집에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낯선 부자(父子)가 집에 들어선다. 이들 부자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마음과 육체의 고통들이 당장의 그것들을 넘어 형이상학적인 쾌락이 된 듯하다. 그리고 아버지(민경진)는 죽는다. 이선과 아들(이명호)만 남았다. 그들은 다르지만 또 닮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때 한영이 찾아오고 한영은 총을 쏴 아들을 맞힌다. 마치 사냥꾼의 행동과도 같이. 그 사냥꾼은 바로 이선의 아버지다. 이선과 한영은 그러나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 볼 수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외롭다. 오늘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집에 남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 통로로 자신을 몰아넣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맨발로 등장하는 이선(김호정)과 아들(이명호)은
이미 죽은 사람들, 즉 "귀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한보(남명렬)가 느끼는 추위와 두려움을 이선은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편안해 보이고 심지어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모든 상황를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자가 
자신의 뜻데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걸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묘한 관음의 시선같아 보였다.
(핀셋에 꽃혀있는 아직 살아있는 나비 표본을 바라보는 수집가의 섬뜩함이랄까?)
창백한 얼굴에 베낭을 메고 등장하는 아들은,
늙은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투정과 떼를 쓰는 비정상적으로 유아적인 인물이다.
불안한 시선과 페티즘을 떠올리게 하는 베낭에 가득한 여자 신발들.
그러니까  여자의 아버지 한영(남명렬)과 남자의 아버지(민경진)은
이 두 귀신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죽은 존재들이며
이미 죽은  두 사람의 환상 속에만 살아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 환상 속 인물들과의 관계마저도
끝장을 내고 끊어버리게 되는 그런...



지금 가만히 되집어 생각해도 극의 내용은 집요하게 어렵고 표현은 찬란하게 수사적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숙명과의 갈등을
나비와 사막이라는 단어 속에 마구마구 구겨넣고
참을성있게 앉아있는 관객에게 일방통행적인 이해와 공감을 끊임없이 
그것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 같다.
그 강요는 심지어 거의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 폭력처럼 어이없이 일방적이다.
이쯤되면,
작품의 이해 여부를 떠나서
그대로 수건을 던지고 링위에 뻗어버리는 편이 어쩌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무차별 폭력의 뒤끝은 아직까지도 불편하고 내내 찜찜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일방적으로 그렇게 얻어터지고 있어야만 했는가?"
(혹시 나 지금 K-1 본거니???)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