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28. 08:18

조카들이 친구들 기념품을 사야 한대서 이집션 바자르를 찾았다.

2년 전에 그랜드 바자르에 갔을 때

엄청난 규모와 미로같은 길때문에 공황상태에 빠졌떤 기억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아예 찾아가지도 않기로 했다.

(여기서 조카들 잃어버리면... 대책 없다!)

바자르를 찾은 메인 목적은 분명 기념품 구입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로쿰가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설탕으로 만든 로쿰은 가격도 저렴하고 5상자를 사면 1상자는 그냥 주던데

꿀로 만든 로쿰은 커다란 덩어리에서 하나하나 잘라 kg 단위로 판매하더라.

"ARSLAN Baharat"라는 곳에서 꿀로 만든 로쿰 3상자와 설탕 로쿰 7상자를 구입했는데

여기 일하시는 분들 쇼맨쉽이 정말 장난 아니다.

프로페셔널의 극치~~~!

직접 먹어보라며 로쿰을 얼마나 많이, 계속 잘라주던지 나중엔 배가 다 부를 지경이었다.

배부르다고 하는데도 계속 로쿰을 잘라주던 조지 크루니 닮은 아저씨는 센스가 대단했다.

우리가 느끼게 하는 걸 알았는지 어느 틈에 시원한 물까지 가져다 주더라.

로쿰 하나하나의 재료도 열심히 설명해주고 이것 저것을 아주 잰틀하게 알려줬다.

눈썹이 붙은 젊은 총각(?)은 표정과 행동이 너무나 재미있고 유쾌해서 한참을 웃었다.

나중엔 보스라는 분까지 합세하셔서 조카들이랑 사진도 찍었다.

꼭 페이스북에 올려달라고 주소 적은 명함까지 여러 장 받았는데

그 자리에선 그러겠노라 했는데 결국 약속은 못지켰다.

아날로그 감성 풍부한 내가 페이스북을 아직 안해서...

(그렇다고 이분들한테 사진을 보내드리자고 페이스북을 할 수는 없고!)

 

예전에는 6시 30분에 문들 닫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7시 30분이 close time이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을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동방의 향신료가 여기서 거래됐기 때문이란다.

향신료에 대해서 잘 알면 구입 의욕이 쏟구쳤을텐데 그쪽으론 워낙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향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냥 보는 걸로 만족했다.

이곳에서 파는 샤프란과 피스타치오는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해서인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구매하더라.

조그만 유리병에 몇 가닥 담긴 말린 샤프란 가격을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 비싼 걸 어떻게 음식에 넣어먹나 싶기도 하고...

(물론 아주 저렴한 샤프란도 있긴 하다.)

 

조카들과 동생이랑

눈과 발로 시장통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손짓 발짓 눈짓으로 의사소통하면서 원하는 걸 구입하는 재미라니!

여기에 능숙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건 절대 아니다.

살짝 못알아듣더라도, 누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소소한 서민들의 일상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기꺼이 유쾌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재미는 그랜드 바자르보다 이집션 바자르쪽이 훨씬 더 쏠쏠한 것 같고!

짐이 많지 않으면 트램길을 따라 술탄아흐멧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권하고 싶다. 

이 길 은근히 운치있고 이국적이라

개인적으로 이 트램길 산책을 정말 좋아했다.

 

쇼핑 후에 이집션 바자르 뒷쪽에 있는 유명한 치즈 퀴네페를 먹으려고 했는데

로쿰때문에 이미 배가 불러서 아쉽지만 그냥 돌아왔다. 

달달함의 끝이 느끼함이라는 건 아무래도 너무 치명적이다.

얼끈한 신라면 생각이 간절했던 이집션 바자르 쇼핑기!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27. 08:15

이스탄불 자미 중에서 공사기간이 가장 길었다는 예니 자미.

한때 재정적인 문제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는데 시기만도 무려 56년이란다.

그대로 멈춰버린 자미 앞에서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말 그대로 꿇어 엎드려 참회로 용서를 비는 순간의 연속이었을까?

아니면 자미에 쏟아부은 재정과 인력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었을까?

예니 자미를 보면서

터키의 그 숱한 자미들이 모두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어진 걸까를 생각케했다.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빨간 십자가들도 떠올랐고!

그래도 터키의 자미들은 수다스럽거나 유난스럽지는 않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이집션 바자르 옆에 있는 예니 자미는 

내부와 외부가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부는 조용하게 엎드린 신도들로 묵직하면서도 정갈한 경건함이 흐르고 

외부의 계단에는 한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친근한 여유와 일상의 평온이 가득하다.

사람들 옆에서 열심이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들.

그대로 엽서의 한 장면이 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집션 바자르의 번잡함과 예니 자미의 고요함.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두 건물은 그러나 묘하게도 서로 형제처럼 잘 어울린다.

마치 사람들의 삶과 거리를 두는 종교는 단지 이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속(俗)과 성(聖)은 어쩌면 다른 게 아닐지도...

 

이슬람 자미 내부에 그림 장식이 거의 없다.

항상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게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 때문이란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그리는 것 자체를 불경이라고 생각했던거다.

신에 향한 불같은 단호함과

범접할 수 없는 신성(神性)의 확고함이 자미 내부에까지 영향을 끼친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금기는 구상이 아닌 추상과 기하학적인 문양이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자미 내벽을 장식하는 타일이나 아라베스크 꽃무늬,

코란 문자와 창문 장식의 화려함과 세밀함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다.

특히나 자미 천정으로 햇빛이 비치면 빛 하나만으로도 자미는 그대로 성소가 된다.

자미에 들어가기전에 세족(洗足)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과 가까운 곳에 일상처럼 자리잡은 camii.

종교란 사실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깊게 파고 들지 않으면서도 내내 함께 동행하며 위로해주는 것.

너무 많이, 너무 멀리 가버린 우리의 종교가 떠올라

저절로 몸이 동그랗게 말린다.

 

마치 내 몸이 하나의 자미가 되는 것 같다.

더 바라지 말고, 더 기다리지 말라고 신이 내게 말한다.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해야 했었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26. 07:59

술탄 아흐멧에서 트램을 타고 에미노뉴에 하차하면

"보스포러스 투어" 외치며 열심히 호객하는 현지인들이 정말 많다.

옷소매를 잡아끄는 현지인들에게 과감한 "No!'를 연발하며

2년 전에 탔던 트리욜 크루즈를 찾아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가까운 곳에 정박해 있는, 금방 출발할거라는 크루즈에 그냥 탑승했다.

(사실은 트루욜을 못 찾았다...ㅋㅋ 에미뇌뉴 항구... 너무 넓다...)

어른과 어린이 구분없이 1인당 10리라.

페리를 타고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가 둘러볼까도 생각했는데

솔직히 조카들을 데리고 모르는 곳을 간다는 게 엄두가 안나서 그냥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비록 수박 겉햩기에 불과하겠지만

크루즈를 타고 아시아 지역과 유럽지역을 훝어보는 것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나라의 한강 유람선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착각! 

물 위를 배를 타고 간다는 건 같긴 하지만 밋밋함과 입체감의 차이랄까?

한강은 솔직히 보스포러스 해협같은 운치와 경관은 기대할 수 없다.

남겨진 게, 보여줄 게 참 없구나 생각하니 좀 샘이 나기도 하더라.

 

해협을 따라 흘러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색적인 건물들.

거대한 돌마바흐체 궁정의 외관에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궁전을 개조한 최고급 호텔 츠라얀 팔라스 호텔은 꼭 미니미 돌마바흐체 같았다.

(이곳에 고 노무현 대통령도 묵었다던데...)

무스타파 케말이 졸업한 사관학교의 뽀쪽한 외형을 보면서는

지키려는 자의 날카로운 칼끝을 생각했고

루멜리 히사르와 반대편에 위치한 아나톨로 히사르를 지나면서는

좁디 좁은 이곳 병목지역에서 숱하게 죽어간 선량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땅을, 바다를, 하늘을 잃는 것만이 폐허는 아니다.

사람을 잃는 건.

그게 가장 큰 상처고, 폐허가 아닐까!

황제의 여름 별장 베일레르메이 궁전은

너무 앙징맞게 예뻐서 마치 인형의 집을 보는 것 같았고

크루클래시탑은 또 다시 전설을 떠올리게 했다.

(공주, 생일, 마법사의 저주, 20살 생일, 과일 바구니 안에 숨어있던 독사. 저주의 실현.. 기타등등... 기타등등...)

꼭 보고 싶었던 오르타쾨이 자미는 대대적인 보수중이라 겉모습조차도 보지 못했다.

오르타괴이의 유명한 감자요리 쿰피르도 잠깐 생각했고...

결국 다음날 루멜리 히사르에서 숙소로 돌아가다 일부러 오르타쾨이에 내려서 쿰피르 골목을 찾아갔다.

(맛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토핑을 잘 골랐어야 했는데 mix로 했더니 맛이 좀 강하더다.)

 

보스포러스 투어는 아마도 이스탄불을 갈 때마다 매번 찾게 될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은데 늘 특별했다.

바람과 햇빛 속에서 어쩐지 말갛게 행궈지는 느낌이라서...

그리고 꼭 기억하자!

배의 오른편에 앉아야 view가 더 좋다는 걸.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스탄불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꼭 해저물녁에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타리라.

그럼 물빛과 하늘빛이 만나는 보스포러스를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됐다!

이걸로 다시 돌아갈 이유...

충분해졌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5. 08:30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무려 700년이나 먼저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아야 소피아.

실제 이곳 내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통째로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바닥에서 천정까지가 무려 55미터고

황금색 돔에 마흔 개의 서까래, 마흔 개의 아치형 창문을 가진 이곳은

내랑과 외랑 이중의 배랑 구조로 되어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절시키겠다는 경건함의 의미였을까?

커다란 청동문을 모두 닫아버리면 실제로 이곳은 완벽하게 고립된 신의 세계가 될 것 같다.

실내 공간을 묘하게 중앙에 집중시켜 실제보다 훨신 더 넓어 보이게 만든 착시현상.

그 비밀을 알면서도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규모가 주는 압박감때문에 저절로 위축이 됐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곳곳이 보수 중이라서 원래의 그 규모를 명확히 알기는 솔직히 힘들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은 지금 현재 보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란 시간이 참 짧다고 생각했는데 변화 앞에선 참 긴 시간이구나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야 소피아의 상들리에.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줄에 매달려있는 상들리에를 보고 있으면

위태로움과 평화과 함께 느껴진다.

그리고 성모마리아상 옆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동판.

암호에 가까운 이 문자는 마호메트와 알라의 이름을 아라비아어로 써놓은 것이란다.

그림에 가까운 이 문자를 앞에 두고 느껴야 하는 막막함은

두번째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읽을 수 없는 문자앞에선 어떠한 상상력도 감히 발동되지가 않는다.

암호같은 문자를 품고 싶다는 열망이 햇빛처럼 쏟아질 뿐...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화들.

여행을 계획하면서 망원렌즈를 굳이 구입했던 이유는 이 모자이크화들 때문이었다.

커다란 그림을 하나하나 채우는 섬세한 큐빅 조각들을 어떻게든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면서 훼손된 시간의 조각들도 조금 읽어보고 싶었다.

회칠로 덮어져야만 했던 비밀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왔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림 앞에서의 현실은

난독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무지뿐이었다.

이곳을 몇 번쯤 더 와야 이 비밀의 끝자락이 열리게 될까?

결국 2층 회랑 한쪽에 있는 단돌로의 무덤 (Henricus Dandolo)에 애궃은 하소연만 해버렸다.

 

신의 모습을 어떻게든 이미지로 그려내려했던 기독교와

인간이 감히 어떻게 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이슬람 문화의 교차는

이 넓은 아야 소피아에 특징적인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다.

신을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신이 창조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글자와 기하학 패턴으로 표현한 이슬람의 흔적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이 더 경외심 가득한 종교에 몰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 갤러리와 돔에 숨어있는 모자이크들과 그림들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았던 건

최대한 기억해서 오래오래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다.

특별한 조명 없이도 아치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빛나는 저 작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다 들숨과 날숨을 쉬는 생명체였다.

어쩌면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불사(不死)의 삶이 여기, 이곳에 담겨져있는 건 아닐까?

저 작은 조각마다 그 수만큼의 인간이 기록되어 있는것 같아 가슴 속이 뻐근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그걸 내내 읽고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하나의 큐빅 조각이 되어 그곳에 박혀있고 싶었는지도...

 

아야 소피아.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하고 완벽한 경전인 곳.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무릎이 꺾이는 곳.

그래서 누구라도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신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니 부끄러움없이 기꺼이 마주볼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4. 13:26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땐 이곳을 아침 일찍 찾아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어 혼자 이곳을 독차지하며 다녔었다.

그러다 지하를 가득 채우던 내 발소리에 내가 섬득했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메두사의 머리를 대면하는데 귀기(鬼氣)가 느껴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두번째 대면은,

다행이 늦은 오후라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신기한 눈초리로 쫒아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아이의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양쪽에 대동하면서 다녔던거다.

이곳도 두번째 방문이라고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어산지 소설 속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하궁전 물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로버트 랭던도 아니면서...

예레바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오묘함은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에전했다.

어두운 지하에 각지에서 가지고온 기둥들을 세우느라 노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사실은 죽음같은 노역을 견뎌낸 노예들의 눈물같아 바라보는게 뻐근하다.

공간이 주는 울림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의 울림이 더 웅장하고 깊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 속의 메두사의 머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진흙 속에 묻혀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차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있을 수 없었던 메두사.

인간의 눈물은 신화의 힘을 뛰어 넘는다.

물에 잠긴 도시 "예레바탄"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이스탄불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려있었다.

초겨울같은 쌀쌀한 날씨.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될만큼 차가운 바람에 당황했다.

꼭 메두사의 저주 같았다.

예레바탄에서는 도저히 힘을 쓸수 없어 낯선 이방인의 틈을 노렸던건지도...

이 도시에서 돌로 변해버린다면!\나는 기꺼이 그곳에 오래 오래 서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메두사여!

그대 노여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3. 09:35

술탄 아흐멧 1세 자미.

2012년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했을때

아쉽게도 이곳 내부를 못봤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한번쯤은 보겠지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결국 내부를 못보고 돌아와버렸다.

아마도 그게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나보다.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와서 처음 간 곳이 이곳인걸보니...

 

블루 모스크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미 내부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지니크에서 생산된 푸른색 타일이 유명하다.

한낯의 햇빛을 그대로 흡수되는 이곳의 내부는

왜 이곳이 꿇어 엎드리는 "자미"인지를 실가케한다.

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때문이 아닌 쏟아지는 빛이 주는 경외심 때문에 무릎이 저절로 꺾인다.

그리고 엄청난 인원의 관광객들에게 또 한 번 무릎이 꺽이고...

   

블루모스크는 내부와 외부에서 느낌이 너무 달라 개인적으론 좀 당혹스러웠다.

외부의 모습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수도원처럼 고요하고 장중한데

내부는 여기저기에서 수근대는 느낌이다.

햇빛때문인지, 사람들 때문인지, 기도하는 소리 때문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환청을 듣었던건지도!)

예전에는 정해진 기도 시간엔 광관객이 아예 들어가지 못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구별없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미 안쪽의 기도하는 곳은 오로지 "only man"의 공간이라 여자 관광객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남자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들어가더만...)

현지 여자들도 기도하기 위해선 자미 외벽에 별도로 설치된 공간만 이용할 수 있다. 

신기한 건,

검은 히잡으로 몸피를 가리고 기도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그 옆에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그때 그들 옆에서 어떤 간절함을 기도하고 싶었을까?

블루모스의 햇빛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상태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왜 나를 이곳을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그리워했을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이유는 없을 거다.

지금도 그곳엔 내가 남겨둔 내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다.

빨리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있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7. 11:28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 이동하는 문제로 꽤 오래 고민했었다.

처음엔 당연히 항공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외국에서 페리를 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도 같고,

페리를 탈 거면 기왕 야간 페리에서 하룻밤을 자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산토리니로의 in은 쾌속페리로, out은 야간 페리로!

결론은!

현명한 선택이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서둘러서 예약한 덕분에 야간페리는 4명이 잘 수 있는 독립된 룸이여서

조용하고 오붓하게 갈 수 있었다.

이층 침대를 보자마자 조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엄청 좋아하더라.

소음이나 흔들림이 걱정되긴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어서 다행이었다.

뭔가 전체적으로 몸이 붕 떠 있는 정도!

확실히 비행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침대칸을 예약하지 못한 여행객은 그냥 배의 바닥이나 카페테리아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던데

그게 또 히피스러워보이는게 살짝 부럽더라.

아무 거리낌없이 바닥에 그야말로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일탈과 자유가 느껴졌다.

 

조카와 동생이 자고 있는 새벽에 또 혼자 일어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산 뒤 갑판으로 나갔다.

바람이 쎈 편이라 사람들이 없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설마 이곳에서, 이 바람 속에서 밤을 보낸 건 아닐테고 참 부지런들 하다.

선상 위에서 보는 아침해는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야말로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느낌.

예뼜고 수줍었다.

사실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는데

피레우스항에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내려왔다.

조카들과 동생을 깨우러!

(이 가족들! 참 곤하게, 제대로 숙면을 취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의 길라잡이는 해와 빛, 이 둘이었던 같다.

의외의 곳에서 나는 그들을 만나 눈부셨고,

그들 덕분에 뽀송하게 건조됐다.

어쩌면 나는 그 속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하얗게 햐얗게 날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부시게 하얀 옥양목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6. 08:35

솔직히 여행을 하다보면 의(衣)와 주(住)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식(食)은 유난히 더 신경을 안쓰게 된다.

이상하게도 일단 눈이 배가 부르면 몸의 배고픔이 전혀 인식되 않는 편이라서...

그러다보니 현지식을 포함한 음식에 대한 추억이 상대적으로 적다.

남들은 여행의 목적을 식도락으로 꼽는다는데...

그러나 이번 여행은 조카들 덕분에 그럴 수가 없었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매 끼니를 떡 벌어지게 먹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안 먹어도 어쨌든 조카들은 챙겨 먹여야만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먹었던 음식들.

생각해보니 아테네에서는 현지식을 먹지 못했다.

샌드위치와 서울에서 끌고간 햇반으로 해결한 정도.

샌드위치는 정말로 환상적일만큼 테러블한 맛이었다.

이 동네 햄들은 맛과 향이 너무 쎄서 아무리 작정을 해도 도무지 친숙해지지가 않는다.

특히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참 곤욕스러웠다.

그래도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넘어와서는 

조카들 성화에 못이겨 한국음식점도 찾아갔다.

<도시락>이라는 식당을 찾기 위해 거의 30 여분을 혼자 헤맸는데

찾고보니 우리가 묵고있는 Phan Hotel 바로 뒷편에서 있는거다.

타고난 길치는 여러모로 참 힘들다...

허무개그같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카들이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전체적으로 너무 짜고 달아~~~)

 

산토리니에 머물면서 찾아갔던 음식점들.

먼저 Oia 초입에 있는 그 유명한 "Blue Sky"

그리스 샐러드 (Theseus), 무사카 (Moussaka), 카르보나라와, 왕새우요리(이름이...^^;;)를 주문했다.

무사카는 감자와 다진 고기, 가지, 치즈를 층층이 쌓아서 오븐에 구운 그리스 전통음식인데.

단백하고 부드러워서 내 입에도 잘 맞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리스 샐러드를 능가할 정도는 물론 아니었고!

왕새우구이와 같이 나온 밥은 베트남쌀처럼 길고 가볍고 찰기도 거의 없었다.

가지고 다닌 튜브형 고추장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래도 조카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었다.

디저트로 나온 치즈크림케익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촉촉해서 하루의 피곤을 노곤하게 달래줬다.

여행책자의 맛집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Blue Sky"는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가격도 괜찮았고 종업원들도 다들 너무 친절해서 좋은 기억으로 담겨 있다.

  

OIa의 또 다른 맛집 "Skala".

Oia의 멋진 바다를 내려다보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은 생각만큼 음식이 맛있지는 않았다.

일단 향이 너무 강해서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아라비아 향료를 넣은 지중해 요리 전문점이란다.

view에 혹 해서 다소 곤욕을 치뤘던 곳.

특히 조카가 먹어보겠다며 도전적으로 시킨 양고기 파이는 냄새가 아니라 체취의 수준이라 한 입씩 먹고는 놀라서 다 남겼다. 

무사카와 함께 꼭 먹어볼 그리스 요리였던 문어요리(Okapodi)도 주문했는데

솔직히 이 음식이 왜 유명한지 잘 모르겠더다.

쫄깃쫄깃한 식감은 나쁘지 않은데 맛은 뭐...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스 샐러드는 어느 음식점에서 주문하든 역시 패가 없다.

특히 "스칼라"에서 먹은 샐러드는 토마토와 오이가 아주 싱싱해서 갈증이 싹 가실 정도였다.

수블라키는 "오벨릭스"나 "럭키스 수블라키"가 더 많았었던 것 같고

타자기(Taztzili) 소스를 없어서 그런지 좀 퍽퍽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수불라키는 이야보다 파라가 훨씬 맛있었다.

("오벨릭스" 보다 "럭키스 수블라키"의 기로스 수블라키가 훨씬 더 단백하고 맛있었던 것 같고!)

 

솔직히 조카들만 아니었다면

여행 내내 Gyros souvlaki 같은 것만 들고다니면서 끼니를 해결했을 거다.

아니면 또 숙소에서 아침만 먹고 저녁까지 굶고 다녔을지도...

이 녀석들 덕분에 그래도 멀쩡한 음식점들을 꽤 찾아다닌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음식과 맛집에 대한 기억들은

온전히 다 이 녀석들 은공이다.

Thank you so mach!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5. 13:32

햇빛 좋은 Oia는 의외로 사진을 찍기가 버거운 곳이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뒤로 세우기도 어딘지 어쩡쩡하고

실제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내가 본 색감과 달라 보여 당황하게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없이 찍어대는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기꺼이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줄만큼 Oia는 넉넉하다.

사진은 skill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렌즈 속 Oia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Oia를 처음 찾아 갔을 땐,

낯선 시선을 기꺼이 받아주고 웃어주는 모습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꾸며진 친절과 소위 말하는 영혼없는 미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아마 그 햇빛이 나를 녹여버렸나보다.

그 햇빛은 아주 농염하고, 아주 은밀하고, 아주 끈질겼으며

심지어 아주 해맑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그래선지 두번째 Oia를 찾아갔을 때 나는 좀 달라져 있엇따. 

나도 모르게 Oia의 구석구석 골목이 보여주는 속살을 즐겼고

상인들의 거품기 가득한 미소에 손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풀어지니 참 편안했다.

시선과 마음을 놓아버리니 찬란함이 보이더라.

바다 속의 햇빛이,

햇빛 속의 바다가 보이더라.

바람의 흔적까지도...

 

햇빛과 정면 대결하고 있는 Oia의 바다는

온통 먹빛이다.

극과 극이 보여주는 대비.

아마도 그 대비를 보기 위해 나는 다시 산토리니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산토리니를 다시 갈 일이 있을까 내내 생각했는데

이게 아마도 다시 갈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되줄 것 같다.

단지 바라는 게 있다면,

산토리니를 두번째 찾을 때는 꼭 혼자이길...

 

외로움!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게 있다면.

그리움! 

언제나 항상 그게 문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 08:21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Oia의 굴라스 성채는

로마시대 때는 망루로 쓰였던 곳이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살짝 초라한 느낌도 들었지만

굴라스 성채 쪽으로 가서 바라본 Oia의 바다는 그대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굴라스 성채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도 오후 5시 경이었을거다.

sun set을 보기 위해선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이곳에 자리잡고 바다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은건,

"기다림"의 시간뿐이다.

기.다.려.

 

아주 못된 이기심인데.

오래 품고 있는 소망 중 하나가

"혼자서 sun set을 독점하기'다.

순간적으로 "다 비켜~~~!"라고 소치치고 싶은 욕망.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도 별로 없었겠지만...)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3번의 sun set을 목격했지만

이날 굴라스 성채에서의 sun set은 일종의 축제였다.

해가 바다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

약속처럼 쏟아지던 사람들의 박수와 휘파람 소리들.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아팠다.

너무 제대로 넘어져서...

그 와중에도 카메라가 멀쩡한지가 제일 걱정이 됐고!

카메라는... 한쪽 모서리가 좀 패였다.

속이 살짝 상하긴 했지만 어쩌라...이것 역시도 이 여행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카메라의 흠집을 볼때마다

이날의 축제같은 sun set이 생각나겠지!

 

 

하늘을 향한

그리고 바다를 그리는 해의 강렬한 욕망!

주위는 온통 핏빛 전쟁터다.

아! 참...

강렬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