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12. 15. 09:24

 

<Phantom>

 

일시 : 2016.11.26. ~ 2017.02.26.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가스통 르루와 <오페라의 유령>

극작 : 아서 코핏 (Arthur Lee Kopit)

작곡 : 모리 예스톤 (Maury Yeston)

편곡 : 킴 샤른베르크 (Kim Sharnberg)

안무 : 제이미 맥다니엘 (Jayme McDaniel)

연출 : 로커트 요한슨 (Robert Johanso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팬텀) / 김순영, 박소현, 이지혜 (크리스틴) / 신영숙, 정영주 (마담 카를로타)

        박철호, 이희정  (제라르 카리에르) / 이창희, 손준호 (필립) / 김주원, 황혜민 (벨라도바)

        윤전일, 엄재용 (젊은 제라르), 이상준 (무슈 숄레) 외

제작 : EMK뮤지컬컴퍼니

 

<엘리자벳>, <모짜르트>, <팬텀>

2013년부터 박효신이 출연한 뮤지컬은 전부 3편이다.

그런데 내가 본 건 <펜텀> 재연이 처음.

솔직히 말하면 오장육부로 노래하는 가수를 좋아하지 않고

특히 소몰이창법 가수의 노래를 듣는건 극도의 피로감이 느껴져 거의 듣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야생화"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아주 단백하고 단정했고 박효신 특유의 소몰이창법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었다.

노래 그 이상의 것이 들리고 느껴졌다.

그리고 공식 발매된 박효신의 7집 정규앨범 "숨"은

집에 들어감과 동시에 습관처럼 틀어놓는 House BGM이 됐다. 

누군가 그랬다.

때로는 머릿속으로 정리되는게 아닌 마음으로 정리되는게 있다고.

박효신의 7집 앨범이 내겐 딱 그랬다.

 

그리고 보게 된 박효신의 팬텀.

지난달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박효신이 나왔었다.

그때 함께 나온 정재일이 이런 말을 했었다.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두 사람이 연기까지 했는데

자신의 연기는 발연기였고 박효신은 똥연기였다고.

그런데 정재일의 발언은 아무래도 거짓말인것 같다.

노래만 기대하고 갔었는데 박효신의 연기는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심지어 박은태의 팬텀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다.

박효신 팬텀이 보여준 드라마틱한 분노...

세상에 이게 이렇게 명확하게 이해되고 설득되다니 놀랐다.

심지어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흐름과 호흡이 일치했다.

그건 하나의 분명한 연주였다.

그것도 기승전결이 확실한!

사실 갓효신이라는 항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인트로를 들으면서 깨끗하게 인정했다.

공연장 마이크와 스피커가 박효신의 성량을 담아내는게 얼마나 턱없이 일인가 실감했다.

차가운 얼음물이 머리 위에서 폭포처럼 내리치는 느낌.

세상에...

어마어마하구나, 박효신.

김순영 크리스틴과 손준호 필립에 대한 아쉬움은 많지만 뭐 괜찮다.

시작과 끝, 전부 다 박효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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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12. 5. 08:51

6차 촛불집회를 다녀왔다.

박근혜의 3차 국민담화문과 비박의 한 발 물러남이 너무 비겁해서

작은 소리와 행동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

퇴근 후 서대문역에서 내려서 시청방면으로 걸어갔다.

도로는 일찍부터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시청이 가까워질수록 인파의 파도가 실감됐다.

내심 지난주보다는 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게다가 날씨까지 온화해서

그야말로 소풍이라도 나온 듯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이 많았다.

나처럼 혼자 나온 사람도 많고.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의 모습에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중고생 혁명"이라는 깃발과 플랜카드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이 어린 아이들이 몰라도 되는 시대였라면 얼마나 좋을까...

교복과 중고생혁명이라는 깃발이 눈 앞에 보일때마다

내 뒷통수는 매번 뻐근하고 둔중해졌다.

 

 

촛불의 파도.

그리고 세월호 7시간 규명을 바라며 함께 한 7시 정각의 암흑.

사람이 한 마음으로 모일때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나는 이 날 다시 한 번 온 몸으로 체화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힘이다.

 

흔들리지 않을 옳음을 위하여!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2. 2. 08:29

 

<팬텀>

 

일시 : 2016.11.26. ~ 2017.02.26.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가스통 르루와 <오페라의 유령>

극작 : 아서 코핏 (Arthur Lee Kopit)

작곡 : 모리 예스톤 (Maury Yeston)

편곡 : 킴 샤른베르크 (Kim Sharnberg)

안무 : 제이미 맥다니엘 (Jayme McDaniel)

연출 : 로커트 요한슨 (Robert Johanso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팬텀) / 김순영, 박소현, 이지혜 (크리스틴) / 신영숙, 정영주 (마담 카를로타)

        박철호, 이희정  (제라르 카리에르) / 이창희, 손준호 (필립) / 김주원, 황혜민 (벨라도바)

        윤전일, 엄재용 (젊은 제라르), 이상준 (무슈 숄레) 외

제작 : EMK뮤지컬컴퍼니

 

박은태 팬텀과 이지혜 크리스틴은 보는 내내

파도를 타는 기분이었다.

맨 처음 박은태 팬텀의 서곡 목소리에 깜짝 놀랐고

그 다음엔 이지혜 크리스틴의 "파리의 멜로디"에 놀랐다.

전자는 예상보다 훨씬 좋아서, 후자는 예상보다 훨씬 아니어서...

사실 박은태 팬텀은 정확한 예상이 안됐었다.

클래식하지도 그렇다고 로멘틱하지도 않을거라고만 짐작했을 뿐이다.

보고 난 느낌은...

전체적으로 아주 젠틀한 느낌.

초연때 류정한 팬텀은 모성애를 극대화시키면서 귀족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박은태 팬텀은 사랑에 올인한 젠틀맨이었다.

서두르거나 망설이지 않고 고요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크리스틴을 향해 가고 있는 남자.

그게 박은태 팬텀이었다.

노래는...

아주 날카롭고 예리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칼날을 들이대는 날카로움은 아니다.

비극적이라는 느낌.

oveture와 딱 맞아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비극적.

그래, 이 단어다.

 박은태 팬텀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한 마다.

비극이 아니라 비극적!

 

이지혜 크리스틴은 첫노래가 너무 불안해서 걱정했는데

Home의 후반부, 팬텀을 만난 이후 소리가 확연히 달라진다.

나중에 알았다.

처음의 어색함과 불안함이 의도된 연기고 표현이었다는걸.

그런 의미에서 팬텀과의 비밀스런 레슨으로 일취월장하는 크리스틴을

초재연을 통틀어 가장 잘 표현한 배우가 이지혜 크리스틴이다.

다른 여배우와 비교해서 연상의 느낌도 전혀 없어 그것 역시 아주 좋았다.

개인적으로 자금껏 무대에서 본 이지혜 연기 중 가장 좋았다.

성악톤을 살려서 노래하니 기존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더라.

비스트로가 좀 걱정스러웠는데 이 장면도 나쁘지 않았다.

임선혜나 김순영의 절정의 기량에 익숙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완성이 아닌 과정의 결과물이 보여서 오히려 두 대가들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리스틴은 이게 맞는것 같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에 점점 몰입하는 것도 인상저이었고

박은태와도 목소리톤이 잘 섞여서 듣기에 편안했다.

필립이 테러블했다는것만 뺀다면 전체적으로 초연보다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음악감독이 김문정으로 바뀌면서

초연보다 더 클래식해졌다는것도 개인적으론 호(好)!

(그러고보니 노래할 때 박은태의 톤이 현악기와 아주 많이 닮았다.)

신영숙과 이상준 콤비는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황혜민과 윤전일의 발레도 훨씬 좋아졌다.

이정렬의 애절한 부성애를 볼 수 없는게 좀 그렇지만

박철민 제라르도 초연때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해져서 좋았다.

 

아직 시작이라 몸에 익지 않는 장면이 있긴한데

전체적인 느낌은 초연보다 훨씬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더 좋아질 것 같아서 

공연 막바지에 이 캐스팅 그대로 다시 한 번 봐도 좋을것 같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28. 08:50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컨디션이 안좋아 집에 있었다.

그래도 8시 소등은 참여했다.

다음주 6차 집회때는 참석해서

맘껏 소리 질러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25. 08:36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6.10.11. ~ 2017.01.01.

장소 : 대학로 TOM 1관

대본, 작사, 작곡, 연출 : 서윤미

음악감독, 편곡 : 김은영

안무 : 안영준

출연 : 이경수, 에녹, 김도빈 (한스) / 전성우, 강영석 (헤르만) / 송상은, 안은진, 이지수 (안나)

        이승원, 박정원 (요나스) / 김경화, 전혜선 (메리)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정확히 한 달 만의 재관람.

원래는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에녹 한스가 예상보다 부진해서 김도빈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박정원도 요나스도 궁금했다.

(이승원이 너무 노숙한 요나스였어서...)

사실 김도빈은 과거에 이 작품에 요나스로 출연했었는데

그때 겁에 잔뜩 질려있는 공황장애 요나스를 잘 표현했었다.

그래서 요나스가 아닌 한스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결론은,

첫번째 관람보다 전체적으로 좋았다.

에녹 한스가 냉철하고 까칠한 느낌이라면

깁도빈 한스는 좀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이었다.

두려움이 감지되는 한스라고나 할까?

(이런 사람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거침없이 무너진다.)

딕션도 정확했고, 감정표현도 확실했고

전성우 헤르만과의 균형감도 좋았다.

그리고 한스가 무대 뒤쪽으로 밀려났을 때도 끝까지 감정을 놓지 않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박정원 요나스도 이승원보다는 좋았지만

누가됐든 송상은 안나때문에 막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건 어쩔 수 없겠다.

누군가는 요나스가 이 작품에서 제일 비중이 없노라 말하는데

나는 결정적인 Key men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나스의 행동, 특히 눈빛을 주목해서 보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박정원은 오래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전성우와 송상은은 말이 필요 없고!

 

이 작품은 참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서 외면도 안되고

불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행복해지기 위해 기꺼이 불행과 동행하겠다는 마지막 대사.

그게 늘 날 잡아 흔든다.

행복, 불행, 동행...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24. 08:58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시 : 2016.11.05. ~ 2017.01.22.

장소 :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극작 : 박햬림

가사 : 백석, 박해림, 채한울

작곡 : 채한울

연출 : 오세혁

출연 :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백석) / 정인지, 최연우 (자야) / 안재영, 유승현 (남자)

제작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백석의 시들을 뮤지컬로 만나게 될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너무 잘 만든 작품이라 보는 내내 놀랐다.

백석과 정지용.

월북했다는 이유로 남한에서 그들의 시를 읽는건 범죄행위에 속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선명하다.

정지용의 "향수"와 백석의 "바다"를 읽고 멍해졌던게.

그런 백석의 시이기에 혹시라도 누가 되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작품은 내 우려를 말끔하게 씻겨줄만큼 넉넉했다.

유학파에 함흥여고 영어선생이었던 잘생긴 모던보이 백석과 기생 자야(子夜)은

백석이 교사로 제직하던 학교의 회식자리에서였단다.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 눈에 반한 백석이 그녀의 손을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주음이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

자야(子夜)라는 이름도 백석이 지어진 이름이었다고.

이들의 사랑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석은 자신이 만주로 떠나면 자야가 자신을 찾아 올거라 확신하고 만주로 홀로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방과 6.25 전쟁.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한채

1966년 백석이 북에서 사망하고

평생 백석을 그리워한 자야는 1999년 폐암으로 사망한다.

사망하기전 지야는 당시 시가 1,000억원 상당의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서 세간을 놀라게 만들었다.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꿈꿔보지 못할 사랑이고

결코 꿈꿔지지 않는 사랑이다.

평생을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며 산다는게

형벌이었을까, 축복이었을까...

이 역시 가늠할 수 없다.

 

강필석의 백석은 기대 이상이었다.

강필석의 목소리는 슬픔과 아련함이 있어 이런류의 역할에 적합하다.

능청스러움부터 애잔한 그리움까지 연기도 깊었다. 

정인지 지야는 슬픔보다는 유쾌함과 발랄함이 강했고

기생보다는 시골 촌부의 느낌이 강했다.

젊은여자가 노인을 흉내내는 것 같아 표정도 명확하지 않고 뭉했다.

감정을 끌고 가는건 좋았는데

관객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힘은 조금 부족해보였다.

(전미도, 김지현, 이지숙이 자야를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대나무로 둘러싼 무대는 정말 좋았고

피아노 연주로 음악 전체를 끌고간건 더없이 탁월했다.

요즘 피아노와 사랑에 빠진 창작뮤지컬 덕분에 귀가 호사한다.

어쩜 이렇게 느낌들이 다 다른지...

 

이 작품,

푹푹 나리는 흰 눈을

조곤조곤 밟는 느낌이다.

어쩐지 쓸쓸만 하다.

섦기만 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지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힌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놓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바다

 

바닷가에 왔어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 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섦기만 하구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23. 08:07

<Interview>

 

일시 : 2016.10.24. ~ 2016.11.27.

장소 : 수현재씨어터

극작,  연출 : 추정화 

작곡, 음악감독 : 허수현

출연 : 이건명, 민영기, 이선근, 임병근 (유진킴) / 김수용, 김경수, 조상웅, 이용규, 고은성 (싱클레어)

        문진아, 한서윤, 김주연, 전예지 (조안)

주최 : 수현재컴퍼니

 

이 작품은 지난 5월 단 12일간의 공연만으로도 호평이 자자했던 뮤지컬이다.

심지어 본게임은 시작도 안됐는데 이미 해외판권까지 팔려

내년 1월에는 됴코, 2월은 뉴욕에서 공연이 될거란다.

(얼마전에 김수로가 트위터로 뉴욕 캐스팅도 공개했던데...)

솔직히 말하면,

허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래서 관람을 망설였던것도 사실인데  모른척하기엔 배우진이 너무 좋았고

들리는 입소문도 여전히 호평 일색이다.

그래서 비합리적인 의심을 버리고 공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놀랐다.

뻔한 이야기이고 예상되는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추정화의 대본과 연출도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이건명이 극의 무게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졌고  

김경수는 차례로 등장하는 다섯명의 인격을 그야말로 신들린듯 연기했다.

한동안 노래할 때 숨소리가 커던 문진아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깔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건 허수현이 만들어낸 음악.

<쓰릴미>를 아주 인상깊게 봐서 그런 작품 한 편 만들고 싶었다는데 성공한 것 같다.

한 대의 피아노로 이렇게 깊고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아주 드라마틱한 감정을 담고있는 음악이라 들으면서 몇 번씩 감탄했다.

(금발의 피아노 연주자 강수영의 활약도 대단했다.)

요즘 추정화, 허수현 부부의 콤비가 일을 내고 있다.

덕분에 관객들은 좋은 창작뮤지컬을 볼 수 있어서 좋고!

(그런 의미에서 차기작 <스모크>도 기대가 된다.) 

 

Dissociative Disorder

흔히 다중인격으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 장애.

이 작품 때문에 예전에 읽었던 <빌리 밀리건(Billy Miligan)>이 생각났다.

1977년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이라는 사람이 수 차례의 강간, 무장강도 협의로 체포된다.

하지만 재판장에 선 그는 자신이 저질렀다는 범행에 대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지능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8년 윌리엄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무죄의 사유는 해리성 정체 장애.

이 사건은 법원에서 해리성 정체 장애로 무죄가 선고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윌리엄에게서 발견된 인격은 무려 24명.

 

싱클레어와 윌리엄의 인격들을 비교해보면 유사성이 발견된다.

어머니의 분노와 의붓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또 다른 나.

그렇게 탄생된 인격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인격들.

이들이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일으키는건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스스로 이런 인격이라도 만들어야만 살 수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면 단죄가 최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무겁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다른 인격 속으로 숨을 수 있음이...

조금은 눈물나게 부럽다.

 

허상, 망상, 상상.

나의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안에 괴물을 안고 산다.

내 안에 너무 많은 내가 있어 내가 누군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넌... 지금 누구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18. 08:26

 

<Toc Toc>

 

일시 : 2016.10.13. ~ 2016.11.20.

장소 : 대학로 TOM 2관

극작 : 로랑 바피 (Laurent Baffie)

각색 : 오세혁 / 번역 : 김희재 

연출 : 이햬제 

출연 : 서현철, 최진석 (프레드) / 김진수, 김대종 (벵상) / 정선아, 김아영 (마리) / 이진희, 손지윤 (릴리)

        김지휘, 김영철 (밥) / 정수영(블랑슈)

제작 : (주)연극열전

 

요즘 같은 세상이 계속된다면 나는 차라리 뚜렛증후군 환자이고 싶다.

뉴스를 클릭할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쏫구치는 쌍욕의 욕구는

이쯤되면 쌍욕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스텐박사를 찾아가 그룹치료든 개별치료든 받아야 할 사람이 수두룩하다.

무의식적으로 걸쭉한 욕이 튀어나오는 뚜렛증후군 프레드,

모든 것을 숫자화해야 하는 계산병 뱅상,

세균과 질병의 공포때문에 타인과 어떠한 신체접촉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증환자 블랑슈,

외출할 때마다 가스와 수도, 문을 잠궜는지 수 십 번씩 확인하는 확인강박증 마리.

아무리 긴 대화도 꼭 두 번씩 해야만 하는 동어반복증 릴리.

완벽한 좌우대칭에 집착하는 보험설계사 밥은 다니는 회사도 AIA 생명이다.

심지어 선을 밟지 못하는 선공포증 환자.

여섯 명의 대책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진료실.

원래 집착과 강박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집착과 강박을 가진 사람들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다.

왜나햐면,

자기 빼곤 다 비정상같으니까.

쉽지 않는, 아니 곱지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어렵게 예약한 스텐박사는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진료시간까지 못오겠다는 연락을 해온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의사라 오랫동안 기다려 겨우 겨우 예약을 했는데...

고민이 시작된다. 

이대로 돌아갈것인가, 아니면 기다릴것인가.

 

2시간이 넘은 공연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틈이 없다.

코믹연기의 대가 서현철의 능청스러움도 빛을 발했고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랑을 충분히 발휘해서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작품을 보다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점점 내가 아닌 타인에게 시선과 촛점이 이동하게 된다.

이즘되면 이 모든 것들을 "건강한 강박"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들 여섯명은 그 어렵다는 "주제파악" 하나는 명확히 하고 있으니까.

이젠 별 개 다 부러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렇게 강박증 하나씩 끌어안고 살는게 훨씬 살 만 하겠다.

정말이지 Toc 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

간절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15. 08:58

 

<블랙버드>

 

일시 : 2016.10.13. ~ 2016.11.20.

장소 : 대명문화공간 1관 비발디파크홀

극작 : 대이비드 헤로우어(David Harrower)

번역, 연출 : 문삼화

출연 : 조재현(레이) / 옥자연, 채수빈(우나)

제작 : 수현재컴퍼니

 

이 연극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안그래도 이미 충분히 그런데...)

아니면 불쾌하거나.

그런데 이 작품.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깊고 진실했다.

급기야 가슴 끝이 먹먹해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됐고 인정했다.

 

과거를 지우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레이 앞에 그야말로 시한폭탄처럼 나타난 우나. 

우나의 복수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복수가 아니다.

이건 그냥 사랑이다.

사랑이니까... 잊을 수 없고.

잊을 수 없으니 찾게 되고

찾았으니 만나야만 하는...

이건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비난을 면치 못할 사랑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진심이란걸 안 지금도 여전히 비난받을 사랑이다.

하지만 그 비난을 막아주고 싶다.

나 혼자라도 기꺼이.

 

우나는...

15년 전처럼 두려움 속에 혼자 남겨질까?

하지만 이번엔 나도, 우나도 안다..

1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레이가 다시 돌아오리란걸.

다만 이번엔 그때처럼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 조재현과 채수빈, 두 배우의 연기는 아주 인상 깊었다.

   배우 채수빈은 조재현에게 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아주 성실하고 치열하게 우나가 돼서 깊은 내면 끝까지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조재현은 눈빛 하나로 15년의 시간을 다 풀어냈다.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가슴 한켠이 묵직하다.

  아픔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아닌 뭔가가 제대로 걸린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1. 11. 13:25

 

<두 개의 방>

 

일시 : 2016.10.20. ~ 2016.11.13.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리 블레싱 (Lee Blessing)

번역, 연출 : 이인수

무대 : 여신동

출연 : 전수지(레이니), 이승주 (마이클), 배해선 (앨렌), 이태구 (워커)

제작 : 예술의 전당, 노네임씨어터

 

무겁고 처절한 작품이다.

보는 내내 마음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고, 앞으로도 결코 내가 모를 고통.

하지만 지금도 중동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 속 이야기.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연극이라니...

또 다시 이 질문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국가의 잘못을 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기다리세요.

대중 앞에 나서는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 그리고 흔히 들어본 대사 앞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자주 울컥했다.

눈이 가려진채 두 팔이 묶여있는 남편,

러그 하나만 남겨놓고 텅 비어있는 남편의 방 안에 있는 아내.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정부는 말한다.

쓸모없는 희망을 하지 말고 조언에 따른 희망을 하라고.

언론 역시 아내에게 말한다.

현실은 정부가 당신의 남편을 죽게 내버려둘거라고. 그러니 목소리를 내라고.

한쪽은 침묵을 한쪽은 공개를 부추긴다.

 

그냥... 다 무섭고 잔인하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대도 잔인함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게 장기, 단기 프로젝트로 취급되고

이번 순서가 아니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정부.

신이 하는 일도 있단다. 신이...

그래도 지금 여기보다 연극 속 세상은 훨씬 더 나은 세상이다.

오프 더 레코드였긴 했지만 진실을 고백했으니까.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칠만큼 가치잇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틀렸어요. 우리 계산이...

우리에겐 자신이 틀렸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운이 나빠서일 뿐이라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수많은 마이클들이  매번 죽어나간다. 

아주 아주 고요하고 무덤덤하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