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슬프다.
이 사람도 쉽게 살아내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덜컥 덜컥 덜미를 잡히는 감정들에 휩쓸려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
마치 conjoined twin 같았다.
정여울의 글.
40대를 바라보는 여자가 20대를 위해 쓴 글은 40대를 넘긴 내가 읽는다.
20대도, 30대도, 40대로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다 똑같다.
자기의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생각이 확고해도
사람들은 늘 방황하고 절망하고 흔들린다.
20대는 20대의 방황이 있고
30대는 30대의 절망이 있고
40대는 40대의 흔들림이 있다.
그 시간대를 지나오는 거.
20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풍경이 먼저 들어왔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아, 이번에도 내 사진이 한 장도 없구나...
책읽는 사람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박물관과 박물관에 숨어있는 쉼터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본능도,
길거리 묘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는 습관도
"출구"라는 단어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미련도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시작하면 다시 되돌아오는 걸음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정여울은 첼로를 배운다고 했다.
첼로까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해금을 배우는 낯선 적응까지도 똑같다.
연주를 잘 하는 게 목적이 아닌 것까지도...
정여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도플갱어"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정여울이 지나갈 40대가 그려진다.
그래도 정여울은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알고 있으니 잘 지나갈테wl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참 힘들게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때때로 힘들고 지치는데...
몸이 아픈건 이젠 이력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육체적인 아픔에 대한 감각은 거의 무뎌졌다.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는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이젠 모르겠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내가 힘들게 지내온 그 시간을 지나는 20대에게.
참지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라고.
그게 비록 타인에게 엄살로 보인다해도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는 걸 그냥 지켜보지 말라고.
참는다고, 숨긴다고 강해지는 걸 절대 아니라고.
위로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그리고 기억하라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혹은 낯선 풍경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위로도 있다는 걸!
매번 사람이 답은 아니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떠나고 싶어졌다.
어쩌나...
나는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흔들리고 있다.
음악과 책으로 어떻게든 달래보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제대로 사고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떤 거래라도 할 수 있는가?"
멜피스토펠레스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파우스트가 되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