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 23. 08:43

<레드>

일시 : 2013.12.21. ~ 2014.01.26.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마크 로스코) / 강필석, 한지상 (캔)

주최 : 신시컴퍼니, 예술의 전당

 

이보다 더 미학적인 작품이 있을까?

보는 내내 열망보다 더 붉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레드>가 유일하다.

공유의 욕망보다 혼자만 알고 싶은 독점의 욕망을 품게 만드는 그런 작품.

관능과 관음의 끝으로 나를 몰어 넣는다.

어떻게 이 작품은 나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작품 자체도, 배우들의 연기도, 여신동의 무대도, 김태훈의 해석도 황홀하다.

솔직히... 온 몸에소름이 끼칠 정도다.

바라건데 신시컴퍼니는 더 자주 이 작품을 올려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장기 공연으로...

(배우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긴 하겠지만...) 

이 작품을 텍스트로 삼고 단어 하나하나까지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뭔가가 끊임없이 나올것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지만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역시도 힘들다.

마크 로스코가 캔이 되고 캔이 마크 로스코가 되는 관계.

그리고 공간에 놓임으로써 시간까지 확장되는 그림.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이 그림들은 가장 완벽한 말이다.

그것도 혼자서 되뇌이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부딪치면서 나누는 대화.

격렬한 실체다.

이 모든것들이 다!

 

한지상 캔이 마스 로스코를 통해 뭔가를 깨달아 자기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강필석 캔은 마스 로스코를 이해함으로써 자기 길을 찾은 사람 같다.

그래서 한지상 캔은 교화적이고, 강필석 캔은 치열하다.

그리고 그건 폭풍전야의 고요함같은 치열함이다.

한지상 캔이 명확한 근거없이 자신감으로 무장한 대학 신입생 느낌이라면

강필석 캔은 산전수전을 조금씩 겪어낸 대학원 졸업반 느낌이다.

강필석이 이 작품을 다시 준비하면서 연출에게 그랬단다.

"캔을 내가 해도 될까? 마크 로스코가 너무나 이해가 돼!"

시간은...

강필석의 고백처럼 캔을 어느새 마크 로스코이게 만든다.

그리고 자만심과 자신만만함으로 똘똘 뭉친 마크 로스코가 나는 참 아프고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도 실제로 마크 로스코는 시그램 빌딩의 벽화를 주문받는 순간부터

예술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나는 캔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마크 로스코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마크 로스코 사이의 배틀이었던거다!

두 사람의 대화가 아닌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치열한 갈등이고 고민의 언어들이다.

 

내 안에 적이 있고, 적 안에도 내가 있다.

재주와 재능을 혼동하는 사람은 중심까지도 흔들릴수 있다.

그러나...

흔들려야 중심이 보이고 그래야 중심이 필요하다.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중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많이 흔들리라고,

그것도 노골적으로 치열하게 흔들리라고.

그래야 흔들리는 관계 속에 중심이 보일거라고.

<레드>가 내게 말을 건다.

 

"뭐가 보이나?"

마크 로스코의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지금...

그걸 찾고 있는 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